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빈 심포니 내한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협연자로 내정됐던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으로 바뀌었고, 지휘를 맡기로 한 필립 조르당 또한 코로나19 확진에 따라 장한나로 변경됐다.
지휘자와 협연자가 모두 바뀌는 와중에 프로그램 또한 기존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변경됐다. 짧은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다소 안전한 연주 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에는 싱싱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1부를 장식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대단한 호연이었다. 장한나와 길 샤함은 타고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음악을 끌어갔고, 빈 심포니의 응집력도 시종일관 단단했다.
전체 3악장에 걸쳐 템포는 다소 빠르게 설정됐지만, 악상을 매만지는 디테일한 표현력은 생생하게 유지됐다. 그 결과 종종 서정적이고 내면적이고 때로는 엄숙한 분위기로 경도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 적정한 온기와 청량감을 동시에 머금게 됐다.
즉 아직 엄숙한 영웅주의에 눌리지 않은 싱그러움, 오히려 같은 시기에 작곡된 베토벤 교향곡 4번을 연상시키는 순수 유희적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만큼 빈 심포니는 입체적이고 선명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지휘자 장한나도 작품의 역동과 서정을 훌륭하게 전달했다.
장대하고 교향악적인 1악장에서 길 샤함은 거장다운 연주를 들려줬다. 전체 관현악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독주부를 잘 조형해내기란 쉽지 않다. 전체를 관류하는 서정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디테일의 변화를 살려내야 한다. 고전적 조형미를 지켜내야 하지만, 관현악의 역동성에 밀리지 않을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지휘자 장한나
길 샤함은 이번 공연에서 그러한 작품의 요구를 너끈히 충족시켰다. 서두름 없이, 기량을 알리려는 연출 없이 그저 음악 속에 들어가 음악을 즐겼다. 그 결과 어려운 것이 쉽게 들렸고, 듣는 이의 마음을 열었다. 1악장 카덴차(크라이슬러 판)는 서정성과 여유로움, 기교가 감동적인 조화를 이룬 순간이었다. 빈 심포니 또한 합주 시에나 솔로 악기의 독주 시에나 선명함과 조화로움을 잃지 않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장한나는 오케스트라의 셈여림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2악장의 피치카토 악구는 이 교향악적인 협주곡을 일순간 실내악으로 바꾸어놓았다. 지휘자 자신이 첼리스트였기 때문일까. 현악의 효과와 흐름에 대해 실로 유연한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2악장의 카덴차는 팀파니를 내세우고, 3악장과의 연결성을 강조함으로써 전체를 하나로 묶는 기능을 설득력 있게 전해줬다. 3악장에서는 빈 심포니의 매력적인 목관악기가 뛰어난 색채로 음악에 생기를 입혔다.
길 샤함과 장한나는 정말로 음악을 즐겼다. 악단과 눈빛을 교환하고, 악기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악상의 에너지를 주고받고, 유희 속에 의미를 실어내며 곡의 대단원을 하나하나 빚어나갔다.
흔들림이 없었고, 긍정의 기운이 가득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동료에 대한 존중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2부의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도 이와 같은 수준 높은 연주가 유지됐다. 장한나와 빈 심포니의 베토벤은 역동적이고 진솔했다. 1악장 서주 부분에서 전체 작품의 중심 리듬이 탄생하는 과정, 본 악장에서 벌어지는 리듬의 향연 등이 화창한 햇살처럼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전체로서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면서도, 개별 악기들의 호흡과 소리는 유연함과 선명함을 잃지 않았다.
2악장에서는 현악의 배음을 최대한 풍성하게 살렸다. 동일 리듬의 반복이 주는 긴장감은 누그러지고, 트리오 부분의 아름다움이 최대한 부각된 해석이었다. 3악장에서도 과장은 없었다. 관객들은 전원 음악의 특성인 긴 지속음 위에 역동성과 디테일을 잘 살려낸, 제대로 된 베토벤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지막 4악장은 말 그대로 리듬의 향연이자 바쿠스 축제의 난장이었다. 곡의 마지막 부분은 압권이었다. 장한나는 폭풍같이 작품을 클라이맥스로 몰고 갔다. 베이스라인이 만들어내는 혼돈을 넘어서서 긍정의 팡파르를 울렸다. 악단의 호흡을 장악하면서도 밝고 유연하며 돌파의 기운이 넘치는, 보기 드문 멋진 피날레였다.
장한나와 빈 심포니는 앙코르곡도 넉넉하게 선사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우리 민요 아리랑, 슈트라우스 형제의 피치카토 폴카까지 장한나와 빈 심포니는 진정으로 프로다웠다. 끝까지 음악에 정성을 쏟았고 존중의 미덕이 관객과 악단 사이에 오갔다.
이번 빈 심포니 공연은 음악으로 마음이 통하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빈 심포니 내한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협연자로 내정됐던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으로 바뀌었고, 지휘를 맡기로 한 필립 조르당 또한 코로나19 확진에 따라 장한나로 변경됐다.
지휘자와 협연자가 모두 바뀌는 와중에 프로그램 또한 기존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변경됐다. 짧은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다소 안전한 연주 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에는 싱싱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1부를 장식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대단한 호연이었다. 장한나와 길 샤함은 타고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음악을 끌어갔고, 빈 심포니의 응집력도 시종일관 단단했다.
전체 3악장에 걸쳐 템포는 다소 빠르게 설정됐지만, 악상을 매만지는 디테일한 표현력은 생생하게 유지됐다. 그 결과 종종 서정적이고 내면적이고 때로는 엄숙한 분위기로 경도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 적정한 온기와 청량감을 동시에 머금게 됐다.
즉 아직 엄숙한 영웅주의에 눌리지 않은 싱그러움, 오히려 같은 시기에 작곡된 베토벤 교향곡 4번을 연상시키는 순수 유희적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만큼 빈 심포니는 입체적이고 선명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지휘자 장한나도 작품의 역동과 서정을 훌륭하게 전달했다.
장대하고 교향악적인 1악장에서 길 샤함은 거장다운 연주를 들려줬다. 전체 관현악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독주부를 잘 조형해내기란 쉽지 않다. 전체를 관류하는 서정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디테일의 변화를 살려내야 한다. 고전적 조형미를 지켜내야 하지만, 관현악의 역동성에 밀리지 않을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지휘자 장한나
길 샤함은 이번 공연에서 그러한 작품의 요구를 너끈히 충족시켰다. 서두름 없이, 기량을 알리려는 연출 없이 그저 음악 속에 들어가 음악을 즐겼다. 그 결과 어려운 것이 쉽게 들렸고, 듣는 이의 마음을 열었다. 1악장 카덴차(크라이슬러 판)는 서정성과 여유로움, 기교가 감동적인 조화를 이룬 순간이었다. 빈 심포니 또한 합주 시에나 솔로 악기의 독주 시에나 선명함과 조화로움을 잃지 않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장한나는 오케스트라의 셈여림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2악장의 피치카토 악구는 이 교향악적인 협주곡을 일순간 실내악으로 바꾸어놓았다. 지휘자 자신이 첼리스트였기 때문일까. 현악의 효과와 흐름에 대해 실로 유연한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2악장의 카덴차는 팀파니를 내세우고, 3악장과의 연결성을 강조함으로써 전체를 하나로 묶는 기능을 설득력 있게 전해줬다. 3악장에서는 빈 심포니의 매력적인 목관악기가 뛰어난 색채로 음악에 생기를 입혔다.
길 샤함과 장한나는 정말로 음악을 즐겼다. 악단과 눈빛을 교환하고, 악기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악상의 에너지를 주고받고, 유희 속에 의미를 실어내며 곡의 대단원을 하나하나 빚어나갔다.
흔들림이 없었고, 긍정의 기운이 가득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동료에 대한 존중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2부의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도 이와 같은 수준 높은 연주가 유지됐다. 장한나와 빈 심포니의 베토벤은 역동적이고 진솔했다. 1악장 서주 부분에서 전체 작품의 중심 리듬이 탄생하는 과정, 본 악장에서 벌어지는 리듬의 향연 등이 화창한 햇살처럼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전체로서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면서도, 개별 악기들의 호흡과 소리는 유연함과 선명함을 잃지 않았다.
2악장에서는 현악의 배음을 최대한 풍성하게 살렸다. 동일 리듬의 반복이 주는 긴장감은 누그러지고, 트리오 부분의 아름다움이 최대한 부각된 해석이었다. 3악장에서도 과장은 없었다. 관객들은 전원 음악의 특성인 긴 지속음 위에 역동성과 디테일을 잘 살려낸, 제대로 된 베토벤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지막 4악장은 말 그대로 리듬의 향연이자 바쿠스 축제의 난장이었다. 곡의 마지막 부분은 압권이었다. 장한나는 폭풍같이 작품을 클라이맥스로 몰고 갔다. 베이스라인이 만들어내는 혼돈을 넘어서서 긍정의 팡파르를 울렸다. 악단의 호흡을 장악하면서도 밝고 유연하며 돌파의 기운이 넘치는, 보기 드문 멋진 피날레였다.
장한나와 빈 심포니는 앙코르곡도 넉넉하게 선사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우리 민요 아리랑, 슈트라우스 형제의 피치카토 폴카까지 장한나와 빈 심포니는 진정으로 프로다웠다. 끝까지 음악에 정성을 쏟았고 존중의 미덕이 관객과 악단 사이에 오갔다.
이번 빈 심포니 공연은 음악으로 마음이 통하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