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찾은 빈필 위로와 추모 담아 공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장면.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며 바흐의 ‘지(G) 선상의 아리아’를 먼저 연주했다. 더블유씨엔(WCN) 제공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연주한 곡은 예정에 없었다.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지휘대에 오르자 단원 한명이 무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먼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에어’(G 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연주가 끝나도 박수는 치지 말아달라”고 관객들에게 당부했다.
연주가 끝나자 긴 묵념이 이어졌다. 3층과 합창석까지 가득 채운 관객들도 숙연한 분위기에서 묵념에 동참했다.
빈필은 이어 원래 프로그램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이 곡이 끝났지만,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지휘봉을 내리지 않은 채 쉬지 않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이 울려 퍼졌다. 이 지휘자는 앞선 대만과 홍콩 연주에서도 두 곡을 이어붙여 연주했다. 두 곡에 일종의 연관성이 있다고 해석한 것 같다.
실제로 두 곡은 주제와 장중한 분위기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바그너 최후의 음악극인 ‘파르지팔’은 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와 예수를 찔렀던 ‘성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순수한 바보처럼 보였던 파르지팔이 유혹을 물리치고 ‘성창’을 되찾아와 모두를 구한다는 구원의 이야기다.
슈트라우스의 걸작 교향시 ‘죽음과 변용’은 두려움과 고통, 투쟁을 거쳐 마침내 죽음이 아름답게 변용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추모곡으로 시작해 구원과 죽음의 승화를 다룬 작품으로 이어지면서 빈 필하모닉의 이날 1부 공연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바치는 추모 연주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부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으로 시작됐다. 예정된 연주가 모두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자 이번엔 지휘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빈의 왈츠는 그저 가벼운 음악에 그치는 게 아니라 빈의 정신과 문화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속에 앙코르 곡으로 춤곡을 연주하는 데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가 고른 앙코르는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차이설른 왈츠’(Zeisserln, Walzer)였다. 빈의 왈츠곡들은 빈 필하모닉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연주하는 빈 왈츠는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2011년과 2013년에 이어 2023년에도 빈 필하모닉의 신년연주회를 지휘한다.
‘차이설른 왈츠’는 그가 내년 신년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이기도 하다. 신년연주회 곡목 가운데 한국 관중들에게 한 곡을 미리 선보인 셈이다.
빈 필하모닉의 이날 공연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음악이 위로가 되고 품격 있는 추모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
국가가 선포한 애도 기간이란 이유로 공공 공연장들이 잇따라 연주회를 취소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 밤이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1년 만에 다시 찾은 빈필 위로와 추모 담아 공연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연주한 곡은 예정에 없었다.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지휘대에 오르자 단원 한명이 무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먼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에어’(G 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연주가 끝나도 박수는 치지 말아달라”고 관객들에게 당부했다.
연주가 끝나자 긴 묵념이 이어졌다. 3층과 합창석까지 가득 채운 관객들도 숙연한 분위기에서 묵념에 동참했다.
빈필은 이어 원래 프로그램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이 곡이 끝났지만,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지휘봉을 내리지 않은 채 쉬지 않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이 울려 퍼졌다. 이 지휘자는 앞선 대만과 홍콩 연주에서도 두 곡을 이어붙여 연주했다. 두 곡에 일종의 연관성이 있다고 해석한 것 같다.
실제로 두 곡은 주제와 장중한 분위기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바그너 최후의 음악극인 ‘파르지팔’은 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와 예수를 찔렀던 ‘성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순수한 바보처럼 보였던 파르지팔이 유혹을 물리치고 ‘성창’을 되찾아와 모두를 구한다는 구원의 이야기다.
슈트라우스의 걸작 교향시 ‘죽음과 변용’은 두려움과 고통, 투쟁을 거쳐 마침내 죽음이 아름답게 변용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추모곡으로 시작해 구원과 죽음의 승화를 다룬 작품으로 이어지면서 빈 필하모닉의 이날 1부 공연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바치는 추모 연주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부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으로 시작됐다. 예정된 연주가 모두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자 이번엔 지휘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빈의 왈츠는 그저 가벼운 음악에 그치는 게 아니라 빈의 정신과 문화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속에 앙코르 곡으로 춤곡을 연주하는 데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가 고른 앙코르는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차이설른 왈츠’(Zeisserln, Walzer)였다. 빈의 왈츠곡들은 빈 필하모닉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연주하는 빈 왈츠는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2011년과 2013년에 이어 2023년에도 빈 필하모닉의 신년연주회를 지휘한다.
‘차이설른 왈츠’는 그가 내년 신년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이기도 하다. 신년연주회 곡목 가운데 한국 관중들에게 한 곡을 미리 선보인 셈이다.
빈 필하모닉의 이날 공연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음악이 위로가 되고 품격 있는 추모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
국가가 선포한 애도 기간이란 이유로 공공 공연장들이 잇따라 연주회를 취소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 밤이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