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 예정 없던 이태원 참사 추모곡 "음악으로 위안과 희망을"
빈 필하모닉(이하 빈 필)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전통’이 뭔지를 잘 말해주는 오케스트라다.
1842년 창립돼 베를리오즈・슈만・브람스・리스트・베르디・바그너의 지휘에 맞춰 연주했다. 1863년에 빈 필을 지휘했던 브람스는 그 8년 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직접 연주했다.
바그너는 빈 필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오케스트라 중 하나”라 했고 지금도 그 평가는 유효하다. 빈 필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클래식, 고전이라는 두꺼운 양피지 속에나 있을법한 미덕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쉰다.
2019년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빈 필의 지휘봉을 잡고 들려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아직도 묵직하게 남아있는 명연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은 화려한 음색의 향연이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빈 필 내한공연이 취소됐다. 작년 리카르도 무티와 내한한 빈 필은 멘델스존 ‘이탈리아 교향곡’에 음영을 드리워 입체적으로 제시했다.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은 실크 같은 목질의 현의 노래에 익숙해질 무렵 금관이 불을 뿜었다. 빈 필은 윤택해 보였던 모습에서 까칠한 질감을 제시하고 2차원으로 파악했던 세계에서 3차원의 깊이를 느끼게 해줬다. 3, 4일 양일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필 내한공연의 지휘봉은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잡았다. 2011년, 2013년 빈 신년음악회를 지휘했고 내년 1월 1일 빈 무지크페라인잘 포디움에 서는 지휘자다.
벨저 뫼스트로서는 2010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러 온 이후 10년 만의 내한이었다. 당시 빠른 템포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후까지 악단을 이끌던 모습이 떠오른다. 군더더기 없이 적재적소에서 자신이 정확히 지시한 그 이상을 얻어내는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지휘를 선보였었다.
그 지휘 스타일은 여전했다.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빈 필 자체의 잘 익은 앙상블을 끄집어내려 했다. 빈 필 내한공연에서는 처음 접한 여성 악장 알베나 다나일로바의 탁월한 리드도 볼거리였다. 고아하고 세련된 음색의 밸런스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3일 첫곡인 바그너 ‘파르지팔 전주곡’에서는 미묘한 빛을 띤 현악기군이 물결 같이 수위를 달리하며 밀려들었다. 관과 현의 부드러운 블렌딩이 돋보였다. 목관의 그윽함 위로 팀파니의 입체적인 파동이 경건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벨저 뫼스트는 박수 칠 틈을 주지 않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을 시작했다. 하프와 플루트가 결합해 ‘천상의 악기’ 같은 소리를 들려줬다. 오보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래한 슬픔이 섞인 착잡한 정서를 토해냈다. 다나일로바의 가냘픈 바이올린이 피워놓은 향불의 연기처럼 하늘로 향했다. 강렬한 총주에서 저음이 일품이었고 섬세함에 이어 홀을 꽉 채우는 양감의 큰 음량으로 빈 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에서는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등 목관악기의 소리가 부드럽고 아취가 그윽하면서도 미묘했다. 특히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군이 갈마들면서 오케스트라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모습은 음반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실연의 진수였다. 현악군의 명확하고 밝은 목질의 사운드에 큰 음량은 모든 오케스트라들의 귀감이 될 만했다.
4일 공연 첫 곡은 브람스 ‘비극적 서곡’이었다. 역시 목관악기가 발군이었다. 구석구석 곡의 구조가 다 보이는 밝은 색채의 해석이었다. 금관악기군 역시 깨끗하고 명료했다.
빈 필이 초연했던 브람스 교향곡 3번에서 현이 따스하게 관의 이음새에 스며들었다. 목관과 현의 대화가 더욱 또렷이 들렸다. 완급 조절로 흐름을 살리기도 했다. 2악장에서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의 선율은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흘러서 유명하다. 벨저 뫼스트는 그러나 여기서 감상적인 음미를 허용하지 않고 스케르초 같은 빠른 템포로 처리했다. 오보에 주자는 이 템포를 못 따라가고 자신의 솔로 부분을 계속 틀려서 의아함을 자아냈다. 4악장은 소담스러운 연주였다. 목관이 소박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날 연주의 백미는 2부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단원들이 등장할 때 악장 다나일로바는 늘 먼저 나와 미소로 객석을 응시했다.
‘일출’은 오르간의 저음으로 시작해 청아한 금관과 팀파니가 작열했다. 현의 트레몰로 뒤에 오르간이 남았다. 여기서 악장을 위시한 현악군의 연주가 귀를 황홀하게 했다. 현과 오르간의 어울림은 그 뒤에도 귀를 붙들어 맸다. 특유의 어둡고 심각해지는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에서 목관과 어우러지는 현의 고음은 진기한 소리로 전해졌다. 악장의 솔로가 탁월했다. 안 들리던 소리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연주였다. 목관에서 악장, 금관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이어달리기의 바통이 잘 보였다.
벨저 뫼스트의 ‘자라투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연관되고 완벽해지는가를 생각했다. 악단 속의 실내악, 실내악 같은 앙상블이 떠오르기도 했다.
빈 필의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양일간 예정에 없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제1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빈 필 운영위원회 의장인 다니엘 프로샤워의 안내에 이어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2악장 ‘에어’. 이른바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춘 부드러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운드로 청중의 가슴속에 그대로 들어왔다. 주위에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곡이 끝나고 박수 없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500여 명의 침묵이 예술의전당을 휘감았다.
앙코르 역시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빈 왈츠는 그저 가볍게 즐기는 음악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음악은 위안과 희망을 준다.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빈의 선물을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뒤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왈츠 한 곡씩 연주했다. 3일에는 ‘카나리아 왈츠’, 4일에는 ‘수채화 왈츠’였다. 빈 필만이 나타낼 수 있는, 자연스런 혈색이 도는 듯한 왈츠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빈 필이 앙코르로 폴카 두 곡을 더 준비했지만 국가애도 기간을 고려해 연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이 주는 위로, 아름다움이 주는 삶의 희망을 느꼈던 양일 간이었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빈 필, 예정 없던 이태원 참사 추모곡 "음악으로 위안과 희망을"
빈 필하모닉(이하 빈 필)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전통’이 뭔지를 잘 말해주는 오케스트라다.
1842년 창립돼 베를리오즈・슈만・브람스・리스트・베르디・바그너의 지휘에 맞춰 연주했다. 1863년에 빈 필을 지휘했던 브람스는 그 8년 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직접 연주했다.
바그너는 빈 필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오케스트라 중 하나”라 했고 지금도 그 평가는 유효하다. 빈 필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클래식, 고전이라는 두꺼운 양피지 속에나 있을법한 미덕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쉰다.
2019년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빈 필의 지휘봉을 잡고 들려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아직도 묵직하게 남아있는 명연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은 화려한 음색의 향연이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빈 필 내한공연이 취소됐다. 작년 리카르도 무티와 내한한 빈 필은 멘델스존 ‘이탈리아 교향곡’에 음영을 드리워 입체적으로 제시했다.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은 실크 같은 목질의 현의 노래에 익숙해질 무렵 금관이 불을 뿜었다. 빈 필은 윤택해 보였던 모습에서 까칠한 질감을 제시하고 2차원으로 파악했던 세계에서 3차원의 깊이를 느끼게 해줬다. 3, 4일 양일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필 내한공연의 지휘봉은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잡았다. 2011년, 2013년 빈 신년음악회를 지휘했고 내년 1월 1일 빈 무지크페라인잘 포디움에 서는 지휘자다.
벨저 뫼스트로서는 2010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러 온 이후 10년 만의 내한이었다. 당시 빠른 템포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후까지 악단을 이끌던 모습이 떠오른다. 군더더기 없이 적재적소에서 자신이 정확히 지시한 그 이상을 얻어내는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지휘를 선보였었다.
그 지휘 스타일은 여전했다.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빈 필 자체의 잘 익은 앙상블을 끄집어내려 했다. 빈 필 내한공연에서는 처음 접한 여성 악장 알베나 다나일로바의 탁월한 리드도 볼거리였다. 고아하고 세련된 음색의 밸런스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3일 첫곡인 바그너 ‘파르지팔 전주곡’에서는 미묘한 빛을 띤 현악기군이 물결 같이 수위를 달리하며 밀려들었다. 관과 현의 부드러운 블렌딩이 돋보였다. 목관의 그윽함 위로 팀파니의 입체적인 파동이 경건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벨저 뫼스트는 박수 칠 틈을 주지 않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을 시작했다. 하프와 플루트가 결합해 ‘천상의 악기’ 같은 소리를 들려줬다. 오보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래한 슬픔이 섞인 착잡한 정서를 토해냈다. 다나일로바의 가냘픈 바이올린이 피워놓은 향불의 연기처럼 하늘로 향했다. 강렬한 총주에서 저음이 일품이었고 섬세함에 이어 홀을 꽉 채우는 양감의 큰 음량으로 빈 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에서는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등 목관악기의 소리가 부드럽고 아취가 그윽하면서도 미묘했다. 특히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군이 갈마들면서 오케스트라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모습은 음반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실연의 진수였다. 현악군의 명확하고 밝은 목질의 사운드에 큰 음량은 모든 오케스트라들의 귀감이 될 만했다.
4일 공연 첫 곡은 브람스 ‘비극적 서곡’이었다. 역시 목관악기가 발군이었다. 구석구석 곡의 구조가 다 보이는 밝은 색채의 해석이었다. 금관악기군 역시 깨끗하고 명료했다.
빈 필이 초연했던 브람스 교향곡 3번에서 현이 따스하게 관의 이음새에 스며들었다. 목관과 현의 대화가 더욱 또렷이 들렸다. 완급 조절로 흐름을 살리기도 했다. 2악장에서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의 선율은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흘러서 유명하다. 벨저 뫼스트는 그러나 여기서 감상적인 음미를 허용하지 않고 스케르초 같은 빠른 템포로 처리했다. 오보에 주자는 이 템포를 못 따라가고 자신의 솔로 부분을 계속 틀려서 의아함을 자아냈다. 4악장은 소담스러운 연주였다. 목관이 소박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날 연주의 백미는 2부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단원들이 등장할 때 악장 다나일로바는 늘 먼저 나와 미소로 객석을 응시했다.
‘일출’은 오르간의 저음으로 시작해 청아한 금관과 팀파니가 작열했다. 현의 트레몰로 뒤에 오르간이 남았다. 여기서 악장을 위시한 현악군의 연주가 귀를 황홀하게 했다. 현과 오르간의 어울림은 그 뒤에도 귀를 붙들어 맸다. 특유의 어둡고 심각해지는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에서 목관과 어우러지는 현의 고음은 진기한 소리로 전해졌다. 악장의 솔로가 탁월했다. 안 들리던 소리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연주였다. 목관에서 악장, 금관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이어달리기의 바통이 잘 보였다.
벨저 뫼스트의 ‘자라투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연관되고 완벽해지는가를 생각했다. 악단 속의 실내악, 실내악 같은 앙상블이 떠오르기도 했다.
빈 필의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양일간 예정에 없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제1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빈 필 운영위원회 의장인 다니엘 프로샤워의 안내에 이어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2악장 ‘에어’. 이른바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춘 부드러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운드로 청중의 가슴속에 그대로 들어왔다. 주위에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곡이 끝나고 박수 없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500여 명의 침묵이 예술의전당을 휘감았다.
앙코르 역시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빈 왈츠는 그저 가볍게 즐기는 음악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음악은 위안과 희망을 준다.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빈의 선물을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뒤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왈츠 한 곡씩 연주했다. 3일에는 ‘카나리아 왈츠’, 4일에는 ‘수채화 왈츠’였다. 빈 필만이 나타낼 수 있는, 자연스런 혈색이 도는 듯한 왈츠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빈 필이 앙코르로 폴카 두 곡을 더 준비했지만 국가애도 기간을 고려해 연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이 주는 위로, 아름다움이 주는 삶의 희망을 느꼈던 양일 간이었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