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국-체코 친선음악회'는 그 어느 해 보다도 한국과 체코 두 나라간의 친선과 우의를 굳게 다졌을 뿐만 아니라, 체코인들에게 한국음악의 종합적인 우수성을 감동적으로 심어준 역사적인 콘서트였다. 10월 3일 오후 6시 반 동유럽 최고의 음악회장인 프라하의 '루돌피눔'(Rudolfinum)의 '드볼작 홀'에서 열린 금년 친선음악회는 지휘자의 선정, 프로그램의 구성, 연주자들의 선정, 청중동원과 리셉션, 공연 후의 좋은 반응 조성 등 모두가 예년에 비해 확연하게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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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필하모니아를 지휘하는 지휘자 민정기(사진=김운하 해외편집위원) |
지휘자 민정기 씨는 서울대음대 및 대학원과 모차르테움대석사과정 전교수석졸업의 학력보유자로 유럽에서 한국인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현대음악연주 교육자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세계 현대음악 제일 지휘자로 명성 높은 데니스 럿셀 데이비스의 수제자이기도 한 민 교수는 '모차르트 신포니에타'의 상임지휘자로서 클래식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의 지휘자로서 활동 중이며, 그 실력을 놓고 볼 때, 유럽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민 교수는 WCN(사장 송효숙)으로부터 이번 연주의 지휘를 의뢰 받았을 때, 체코 국민들이 가장 자랑하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의 작품들을 선정하고, 현재 최고의 체코 작곡가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미로슬라브 스른카'(Miroslav Srnka)에게 직접 연락, 그의 좋은 작품을 전달받았다. 그는 또한 작곡가 윤이상 박사 별세 후 유럽에서 최고의 한국인 작곡가로 존경을 받고 있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 교수의 대표적 관현악곡 '소리'를 연주곡으로 선정했다.
WCN 선정의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이며 한양대 음대에서 후진을 양성 중인 김응수(예명 Edwin E.S, Kim)교수,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활동 중인 테너 정호윤이었다. 현재 체코에서 최고의 오페라 가수 군에 속해 있는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Lucie Silkenova)'가 대사관추천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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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김응수 교수, 테너 정호윤, 민정기 지휘자,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의 무대 인사(사진=김운하 해외편집위원) |
빈국립음대등 유럽 3개 명문음대졸업, 지네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등 3개 저명 국제 콩쿠르 1등, 체코, 오스트리아 등 유럽을 비롯한 국내에서의 화려한 연주경력을 가진 김응수 교수는 안토닌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작품53을 연주하게 되었다.
서울음대, 베를린예술대를 졸업, 빈국립오페라극장등 저명 오페라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테너 정호윤은 김동진 곡 '가고파'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택했다.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는 한국가곡 '그리운 금강산(최영섭 곡)', 안토닌 드볼작의 오페라 '루살카'의 아리아 'Měsíčku na nebo hlubokém'을 선택했다. 모두 환영받는 선곡이었다.
처음 지휘를 의뢰받고 나서 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 경위에 관해 공연 당일 민 교수를 만나 들어보았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이삼십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전 세계가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글로벌화 되어있고, 원하면 언제든지 고국을 방문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경제력도 갖추게 되었죠. 유럽에서 한국인들이 주최하는 음악회의 수준이 교민 위문공연이나 젊은 협연자들이 대거 출연해서 한 악장씩 짧게 연주하고 들어가는 재롱잔치 수준의 행사로 끝나게 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일입니다. 더 이상 우리끼리의 잔치가 아니라 현지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프라하는 그러기에 충분한 국제문화도시입니다. 그런 뜻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 씨에게 연주시간이 사십분에 육박하는 드보르작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게 했어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곡'을 연주하느냐 입니다. 우리나라 독주자들이나 성악가들의 수준은 이미 전세계 톱 수준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서양음악역사가 짧은 관계로, 우리에겐 이곳 체코처럼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같은 작곡가는 없지요. 하지만 국제무대에 내놓을 만한 작곡가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이후의 한국인 작곡가들은 윤이상 선생을 필두로 줄줄이 국제적인 수준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박영희 선생님이 그 대표적인 분으로, 지난 삼십여 년간 전 유럽 작곡계의 주목을 받으며 우뚝 서 계신 분입니다. Miroslav Srnka 는 체코뿐만이 아니라, 이미 전유럽에서 가장 눈에 띄게 떠오르는 작곡가 입니다. 젊은 나이에 굴지의 악보출판사인 Bärenreiter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 독일 바이에른 국립가극장에서 키릴 페트렝코의 지휘로 신작오페라 초연을 위해 같이 연습 중이라 연주당일 참석을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현대작곡가 위주의 어려운 음악만을 중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시대 한국과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들 외에도 두 나라의 역량있는 젊은 성악가들도 한 무대에 섭니다. 베르디, 푸치니, 드보르작의 아리아들 외에도 지난 반세기동안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려온 애창곡 '가고파' 와 '그리운 금강산'이 연주됩니다. 이따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체코 소프라노가 '그리운 금강산'을 너무 잘 준비했습니다. 가슴이 뭉클 하더군요. 이번 공연은 양국 간의, 그리고 세대 간의, 작곡가와 연주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레퍼토리 선정 등 모든 면에서 균형 잡힌 안배가 적절히 되었어요. 이제 연주만 잘하면 되겠군요.(웃음)"
그러나 첫 연습 직전에 염려를 하게 한 것은, 창단 21년 역사를 가진, 자존심이 강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라하 필하모니아(Prague Philharmonia)'가 박영희 교수의 관현악곡 '소리(Sori)'에 트집을 잡고 나선 것이다. 박 교수가 소속되어 있는 이탈리아 출판사 Riccordi가 재정문제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뮌헨지사를 없앤 후라서 악보를 보내는 시간이 늦어져서 연습 사흘 전에야 악보가 도착했고, 뚜껑을 열어 보니 악보가 어려워 짧은 연습시간으로는 연주가 어렵겠다는 것이다. 돈을 더 달라는 의도인 듯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민정기 교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정해진 첫 리허설 시간에 모이자 말문을 열었다. 자신은 지휘자로서 이번 친선음악회의 의뢰를 받고 왔을 뿐, 계약이나 금전문제, 심지어 정치관계는 잘 모른다. 한국-체코 두 나라가 친선을 두텁게 하자는 근본 뜻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뜻이 아니겠느냐? 여러분들이 훌륭한 음악가들인 것을 잘 알고 왔다. '소리(Sori)'의 악보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Srnka의 곡보다 기교적으로 훨씬 쉽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나와 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여러분 스스로가 이 곡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즐기게 될 것이라 약속한다. 이번에 나와 여러분은 다른 것은 모두 뒤로 물리고, 예술가로 만나서 예술가로 멋진 연주를 했으면 한다고 간곡한 인사말을 하고,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아임소소리포소리(I'm so sorry for Sori)" 라는 위트넘치는 조크 한마디를 덧붙여 단원들의 마음을 풀고 웃는 얼굴로 연습을 시작하도록 이끄는 재치를 보였다.
독일 브레멘에서 급히 온 박영희 교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악보의 모양은 현대곡이라서 좀 복잡스럽게 보이나 음악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서양의 리듬이나 음색과는 다른 한국가락과 장단을 스스로 춤사위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다. 박 교수는 그의 음악의 특색인 타악기 기법을 실연하기도 했다. 프라하에 한국국악기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집에 있던 한국의 전통 불교 사찰 종을 직접 들고 왔다.
프라그 필하모니아 단원들은 처음에 박영희 교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번째 리허설 때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올해 70세인 이 노 교수가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 첫 여자 작곡과 주임교수, 첫 여자 부총장을 지낸 세계적인 작곡가임을 알게 되었다.
단원들은 또 박영희 교수가 1979년 파리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를 비롯한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세계최고의 현대음악제인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 네 번이나 작곡위촉을 받은 작곡가이며, 현재 독일최고명예직인 베를린 예술원 위원임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음의 세세한 면까지 집어내며 짧은 시간에 연주수준을 끌어올리는 민정기 지휘자의 탁월한 능력에 완전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연이 시작된 오후 6시 반, 넓은 루돌피눔 드볼작 홀이 청중들로 꽉 찼다. 문하영 주체코한국대사, 박민우 전문관, 윤종석 영사등 대사관 직원들과 각 기업 상사지사협회회원들과 가족, 송효숙 사장을 비롯한 WCN 직원들, 프라하 거주 동포들이 체코 청중들과 함께 자리를 메웠다.
제일 먼저 연주된 Miroslav Srnka의 곡은 'No Night No Land No Sky'였다. 1975년 프라하 출생인 스른카는 프라하 찰스대학 졸업 후 베르린 훔볼트대학과 파리음악원을 유학한 엘리트 작곡가로서 광범위에 걸친 작곡활동과 교수생활, 음악잡지 편집장, 작곡출판인, '프라하 현대 앙상블' 창단 운영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선정하여 보낸 위의 곡은 ‘현대의 상황’을 어렵지 않은 독특한 현대적 관현악법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김응수 교수는 안톤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작품 53번을 연주했는데,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스승인 명교수 이고르 오짐이 직접 소개를 하여 안톤 드보르작의 외손자이며 작곡가이자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젭 수크에게 보내 이 곡을 배우게 했기 때문에, 그 어떤 현존 연주가들보다도 훌륭한 연주를 해냈다.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일어나 앙코르 곡으로, 아름다우나 매우 난해 한 Ysaye의 바이올린 솔로 소나타 제3번 '발라드'를 대가답게 연주했다.
2006년부터 2011년 사이 비엔나 국립오페라단에서 7시즌이나 솔로이스트로 활동할 때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만투아 백작역으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매우 잘 불러 인기를 독차지했던 테너 정호윤은 이날 밤에도 이 아리아를 너무나 멋있게 불렀다. 한국가곡 김동진 곡의 '가고파'는 특히 동포청중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체코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는 한국대사관에서 연습을 거듭한 최영섭곡 '그리운 금강산'을 너무나도 잘 불렀다. 가사의 정확한 발음뿐만이 아니라, 그 감정의 표현이 한국가수 이상으로 좋았다고 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그녀의 오페라 '루살카'의 달빛의 아리아는 모국의 작곡가의 모국어 노래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그 어느 유명한 가수보다도 감동이 넘쳐흘렀다.
테너 정호윤과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의 듀엣,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중의 'o soave fanciulla'도 좋았다. 이들은 시간 부족으로 무대리허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왔는데도, 호흡과 연기가 너무나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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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너 정호윤과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의 듀엣 무대(사진=김운하 해외편집위원) |
연습부족으로 가장 염려스러워 했던 박영희 교수의 관현악곡 '소리'는 이날 밤 가장 두드러진 연주였다. 프라하 필하모니아는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이지만, 이날 밤의 그들의 연주는 상상을 넘는 황홀한 연주였다. 보헤미아인들의 짙은 정서와 기교, 신명이 함께 어우러져 펼쳐지는 ‘사물놀이 클라이막스’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1980년 도나우에싱엔에서 울려 퍼진 이래로 전 유럽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리'는 1979년 10.26사태이후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의 국내외적 반향의 영감 속에서 창작된 것으로, 1956년 이미 소련의 탱크 앞에 무참하게 짓밟힌 '프라하의 봄'을 겪은 프라하 필하모니아 단원들에게는 피로써 서로가 감전된 것 같았다. 거문고를 연상시키는 저음현악기들의 묵직한 울림을 실은 농현과 애절한 글리산도, 타악기들의 요란한 진동과 관악기들의 절규, 형언할 수 없이 깊은 한을 품은 듯 가슴을 에는 한숨소리의 묘사, 흥겨운 리듬위에서 결코 흥겹지 않은 억눌린 신음을 내며 추는 살풀이 춤,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한없이 맑고 영롱한 한국 심산유곡의 풍경소리... 모든 청중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빠져들어 전율하는 듯 했다. 땀을 소나기처럼 흘리면서 지휘자가 지휘봉을 천천히 정지시키는 그 마지막 몇 초간, 청중들도 저절로 따라서 숨이 멎은 듯했다. 그 참을 수 없는 마지막 적막을 깨고 마침내 박수갈채와 환호가 폭풍처럼 휘몰아 쳤다.
지휘자의 부름으로 무대인사를 뜨겁게 받고 내려 온 박영희 교수는 “이것은 기적이에요. 어떻게 두 번 밖에 연습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훌륭한 연주와 감동이 나올 수 있었나요! 이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어요. 이 감동을 만들어 낸 민정기 지휘자가 참으로 놀랍습니다”라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박 교수의 감동은 리셉션 내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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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정기 지휘자의 소개로 무대인사 중인 박영희 교수(사진=김운하 해외편집위원) |
프라하까지 이 음악회를 들으려고 왔다는 전 오스트리아 국립방송국 음악 프로듀서 겸 대학교수인 프란츠 바그너박사는 연주 후 박영희 교수와 민정기 지휘자를 보고, “한국음악인들이 3대 0으로 이겼어요!”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작곡, 지휘, 연주 등 세 부문에서 모두 한국이 이겼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레히 클래식 페스티발의 창립자겸 대표인 마리스 바그너 여사도 동감이라고 말했다.
주체코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리셉션도 훌륭했다. 체코명사들과 청중들, 한국동포들이 모두 참석하여 불고기, 김밥, 떡 등 한국음식들과 와인과 맥주, 음료수, 과일, 디저트 등을 즐겼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몰려 음식 담은 그릇들이 깨끗하게 비기도 했다.
땀에 흠뻑 젖어서 유쾌한 모습을 보이던 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교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행사이지만, 좋은 계획을 제대로 세워서 오늘처럼 놀라운 결과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이런 행사를 기획하시는 분들이 제대로 된 전문예술인들에게 더욱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의미 없는 명목으로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 국가예산이 어이없이 낭비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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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한국-체코 친선음악회'는 그 어느 해 보다도 한국과 체코 두 나라간의 친선과 우의를 굳게 다졌을 뿐만 아니라, 체코인들에게 한국음악의 종합적인 우수성을 감동적으로 심어준 역사적인 콘서트였다. 10월 3일 오후 6시 반 동유럽 최고의 음악회장인 프라하의 '루돌피눔'(Rudolfinum)의 '드볼작 홀'에서 열린 금년 친선음악회는 지휘자의 선정, 프로그램의 구성, 연주자들의 선정, 청중동원과 리셉션, 공연 후의 좋은 반응 조성 등 모두가 예년에 비해 확연하게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휘자 민정기 씨는 서울대음대 및 대학원과 모차르테움대석사과정 전교수석졸업의 학력보유자로 유럽에서 한국인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현대음악연주 교육자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세계 현대음악 제일 지휘자로 명성 높은 데니스 럿셀 데이비스의 수제자이기도 한 민 교수는 '모차르트 신포니에타'의 상임지휘자로서 클래식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의 지휘자로서 활동 중이며, 그 실력을 놓고 볼 때, 유럽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민 교수는 WCN(사장 송효숙)으로부터 이번 연주의 지휘를 의뢰 받았을 때, 체코 국민들이 가장 자랑하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의 작품들을 선정하고, 현재 최고의 체코 작곡가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미로슬라브 스른카'(Miroslav Srnka)에게 직접 연락, 그의 좋은 작품을 전달받았다. 그는 또한 작곡가 윤이상 박사 별세 후 유럽에서 최고의 한국인 작곡가로 존경을 받고 있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 교수의 대표적 관현악곡 '소리'를 연주곡으로 선정했다.
WCN 선정의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이며 한양대 음대에서 후진을 양성 중인 김응수(예명 Edwin E.S, Kim)교수,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활동 중인 테너 정호윤이었다. 현재 체코에서 최고의 오페라 가수 군에 속해 있는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Lucie Silkenova)'가 대사관추천으로 참여했다.
빈국립음대등 유럽 3개 명문음대졸업, 지네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등 3개 저명 국제 콩쿠르 1등, 체코, 오스트리아 등 유럽을 비롯한 국내에서의 화려한 연주경력을 가진 김응수 교수는 안토닌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작품53을 연주하게 되었다.
서울음대, 베를린예술대를 졸업, 빈국립오페라극장등 저명 오페라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테너 정호윤은 김동진 곡 '가고파'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택했다.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는 한국가곡 '그리운 금강산(최영섭 곡)', 안토닌 드볼작의 오페라 '루살카'의 아리아 'Měsíčku na nebo hlubokém'을 선택했다. 모두 환영받는 선곡이었다.
처음 지휘를 의뢰받고 나서 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 경위에 관해 공연 당일 민 교수를 만나 들어보았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이삼십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전 세계가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글로벌화 되어있고, 원하면 언제든지 고국을 방문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경제력도 갖추게 되었죠. 유럽에서 한국인들이 주최하는 음악회의 수준이 교민 위문공연이나 젊은 협연자들이 대거 출연해서 한 악장씩 짧게 연주하고 들어가는 재롱잔치 수준의 행사로 끝나게 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일입니다. 더 이상 우리끼리의 잔치가 아니라 현지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프라하는 그러기에 충분한 국제문화도시입니다. 그런 뜻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 씨에게 연주시간이 사십분에 육박하는 드보르작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게 했어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곡'을 연주하느냐 입니다. 우리나라 독주자들이나 성악가들의 수준은 이미 전세계 톱 수준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서양음악역사가 짧은 관계로, 우리에겐 이곳 체코처럼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같은 작곡가는 없지요. 하지만 국제무대에 내놓을 만한 작곡가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이후의 한국인 작곡가들은 윤이상 선생을 필두로 줄줄이 국제적인 수준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박영희 선생님이 그 대표적인 분으로, 지난 삼십여 년간 전 유럽 작곡계의 주목을 받으며 우뚝 서 계신 분입니다. Miroslav Srnka 는 체코뿐만이 아니라, 이미 전유럽에서 가장 눈에 띄게 떠오르는 작곡가 입니다. 젊은 나이에 굴지의 악보출판사인 Bärenreiter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 독일 바이에른 국립가극장에서 키릴 페트렝코의 지휘로 신작오페라 초연을 위해 같이 연습 중이라 연주당일 참석을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현대작곡가 위주의 어려운 음악만을 중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시대 한국과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들 외에도 두 나라의 역량있는 젊은 성악가들도 한 무대에 섭니다. 베르디, 푸치니, 드보르작의 아리아들 외에도 지난 반세기동안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려온 애창곡 '가고파' 와 '그리운 금강산'이 연주됩니다. 이따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체코 소프라노가 '그리운 금강산'을 너무 잘 준비했습니다. 가슴이 뭉클 하더군요. 이번 공연은 양국 간의, 그리고 세대 간의, 작곡가와 연주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레퍼토리 선정 등 모든 면에서 균형 잡힌 안배가 적절히 되었어요. 이제 연주만 잘하면 되겠군요.(웃음)"
그러나 첫 연습 직전에 염려를 하게 한 것은, 창단 21년 역사를 가진, 자존심이 강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라하 필하모니아(Prague Philharmonia)'가 박영희 교수의 관현악곡 '소리(Sori)'에 트집을 잡고 나선 것이다. 박 교수가 소속되어 있는 이탈리아 출판사 Riccordi가 재정문제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뮌헨지사를 없앤 후라서 악보를 보내는 시간이 늦어져서 연습 사흘 전에야 악보가 도착했고, 뚜껑을 열어 보니 악보가 어려워 짧은 연습시간으로는 연주가 어렵겠다는 것이다. 돈을 더 달라는 의도인 듯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민정기 교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정해진 첫 리허설 시간에 모이자 말문을 열었다. 자신은 지휘자로서 이번 친선음악회의 의뢰를 받고 왔을 뿐, 계약이나 금전문제, 심지어 정치관계는 잘 모른다. 한국-체코 두 나라가 친선을 두텁게 하자는 근본 뜻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뜻이 아니겠느냐? 여러분들이 훌륭한 음악가들인 것을 잘 알고 왔다. '소리(Sori)'의 악보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Srnka의 곡보다 기교적으로 훨씬 쉽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나와 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여러분 스스로가 이 곡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즐기게 될 것이라 약속한다. 이번에 나와 여러분은 다른 것은 모두 뒤로 물리고, 예술가로 만나서 예술가로 멋진 연주를 했으면 한다고 간곡한 인사말을 하고,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아임소소리포소리(I'm so sorry for Sori)" 라는 위트넘치는 조크 한마디를 덧붙여 단원들의 마음을 풀고 웃는 얼굴로 연습을 시작하도록 이끄는 재치를 보였다.
독일 브레멘에서 급히 온 박영희 교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악보의 모양은 현대곡이라서 좀 복잡스럽게 보이나 음악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서양의 리듬이나 음색과는 다른 한국가락과 장단을 스스로 춤사위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다. 박 교수는 그의 음악의 특색인 타악기 기법을 실연하기도 했다. 프라하에 한국국악기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집에 있던 한국의 전통 불교 사찰 종을 직접 들고 왔다.
프라그 필하모니아 단원들은 처음에 박영희 교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번째 리허설 때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올해 70세인 이 노 교수가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 첫 여자 작곡과 주임교수, 첫 여자 부총장을 지낸 세계적인 작곡가임을 알게 되었다.
단원들은 또 박영희 교수가 1979년 파리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를 비롯한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세계최고의 현대음악제인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 네 번이나 작곡위촉을 받은 작곡가이며, 현재 독일최고명예직인 베를린 예술원 위원임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음의 세세한 면까지 집어내며 짧은 시간에 연주수준을 끌어올리는 민정기 지휘자의 탁월한 능력에 완전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연이 시작된 오후 6시 반, 넓은 루돌피눔 드볼작 홀이 청중들로 꽉 찼다. 문하영 주체코한국대사, 박민우 전문관, 윤종석 영사등 대사관 직원들과 각 기업 상사지사협회회원들과 가족, 송효숙 사장을 비롯한 WCN 직원들, 프라하 거주 동포들이 체코 청중들과 함께 자리를 메웠다.
제일 먼저 연주된 Miroslav Srnka의 곡은 'No Night No Land No Sky'였다. 1975년 프라하 출생인 스른카는 프라하 찰스대학 졸업 후 베르린 훔볼트대학과 파리음악원을 유학한 엘리트 작곡가로서 광범위에 걸친 작곡활동과 교수생활, 음악잡지 편집장, 작곡출판인, '프라하 현대 앙상블' 창단 운영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선정하여 보낸 위의 곡은 ‘현대의 상황’을 어렵지 않은 독특한 현대적 관현악법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김응수 교수는 안톤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작품 53번을 연주했는데,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스승인 명교수 이고르 오짐이 직접 소개를 하여 안톤 드보르작의 외손자이며 작곡가이자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젭 수크에게 보내 이 곡을 배우게 했기 때문에, 그 어떤 현존 연주가들보다도 훌륭한 연주를 해냈다.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일어나 앙코르 곡으로, 아름다우나 매우 난해 한 Ysaye의 바이올린 솔로 소나타 제3번 '발라드'를 대가답게 연주했다.
2006년부터 2011년 사이 비엔나 국립오페라단에서 7시즌이나 솔로이스트로 활동할 때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만투아 백작역으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매우 잘 불러 인기를 독차지했던 테너 정호윤은 이날 밤에도 이 아리아를 너무나 멋있게 불렀다. 한국가곡 김동진 곡의 '가고파'는 특히 동포청중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체코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는 한국대사관에서 연습을 거듭한 최영섭곡 '그리운 금강산'을 너무나도 잘 불렀다. 가사의 정확한 발음뿐만이 아니라, 그 감정의 표현이 한국가수 이상으로 좋았다고 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그녀의 오페라 '루살카'의 달빛의 아리아는 모국의 작곡가의 모국어 노래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그 어느 유명한 가수보다도 감동이 넘쳐흘렀다.
테너 정호윤과 소프라노 루치에 실케노바의 듀엣,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중의 'o soave fanciulla'도 좋았다. 이들은 시간 부족으로 무대리허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왔는데도, 호흡과 연기가 너무나 절묘했다.
연습부족으로 가장 염려스러워 했던 박영희 교수의 관현악곡 '소리'는 이날 밤 가장 두드러진 연주였다. 프라하 필하모니아는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이지만, 이날 밤의 그들의 연주는 상상을 넘는 황홀한 연주였다. 보헤미아인들의 짙은 정서와 기교, 신명이 함께 어우러져 펼쳐지는 ‘사물놀이 클라이막스’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1980년 도나우에싱엔에서 울려 퍼진 이래로 전 유럽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리'는 1979년 10.26사태이후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의 국내외적 반향의 영감 속에서 창작된 것으로, 1956년 이미 소련의 탱크 앞에 무참하게 짓밟힌 '프라하의 봄'을 겪은 프라하 필하모니아 단원들에게는 피로써 서로가 감전된 것 같았다. 거문고를 연상시키는 저음현악기들의 묵직한 울림을 실은 농현과 애절한 글리산도, 타악기들의 요란한 진동과 관악기들의 절규, 형언할 수 없이 깊은 한을 품은 듯 가슴을 에는 한숨소리의 묘사, 흥겨운 리듬위에서 결코 흥겹지 않은 억눌린 신음을 내며 추는 살풀이 춤,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한없이 맑고 영롱한 한국 심산유곡의 풍경소리... 모든 청중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빠져들어 전율하는 듯 했다. 땀을 소나기처럼 흘리면서 지휘자가 지휘봉을 천천히 정지시키는 그 마지막 몇 초간, 청중들도 저절로 따라서 숨이 멎은 듯했다. 그 참을 수 없는 마지막 적막을 깨고 마침내 박수갈채와 환호가 폭풍처럼 휘몰아 쳤다.
지휘자의 부름으로 무대인사를 뜨겁게 받고 내려 온 박영희 교수는 “이것은 기적이에요. 어떻게 두 번 밖에 연습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훌륭한 연주와 감동이 나올 수 있었나요! 이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어요. 이 감동을 만들어 낸 민정기 지휘자가 참으로 놀랍습니다”라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박 교수의 감동은 리셉션 내내 계속됐다.
프라하까지 이 음악회를 들으려고 왔다는 전 오스트리아 국립방송국 음악 프로듀서 겸 대학교수인 프란츠 바그너박사는 연주 후 박영희 교수와 민정기 지휘자를 보고, “한국음악인들이 3대 0으로 이겼어요!”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작곡, 지휘, 연주 등 세 부문에서 모두 한국이 이겼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레히 클래식 페스티발의 창립자겸 대표인 마리스 바그너 여사도 동감이라고 말했다.
주체코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리셉션도 훌륭했다. 체코명사들과 청중들, 한국동포들이 모두 참석하여 불고기, 김밥, 떡 등 한국음식들과 와인과 맥주, 음료수, 과일, 디저트 등을 즐겼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몰려 음식 담은 그릇들이 깨끗하게 비기도 했다.
땀에 흠뻑 젖어서 유쾌한 모습을 보이던 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교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행사이지만, 좋은 계획을 제대로 세워서 오늘처럼 놀라운 결과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이런 행사를 기획하시는 분들이 제대로 된 전문예술인들에게 더욱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의미 없는 명목으로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 국가예산이 어이없이 낭비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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